2025. 3. 24. 20:45ㆍ비즈니스/경영전략
1938년 3월 22일.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한 건물에 자본금 3만원(현재가치 약 3억원)으로 밀가루와 청과를 판매하는 회사가 설립됐다.
삼성상회(三星商會)란 이름을 내걸고 시작했던 이 회사는 국내 재계 서열 1위 삼성의 시작이었다.
◇건어물·과일 유통으로 확장…전쟁으로 고철 수집해 日에 판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과 함께 1938년 3월 22일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는 주로 밀가루와 청과를 판매했다.
대표상품이었던 별표국수가 대구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건어물, 과일 유통 무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성장세가 지속되자 이 창업회장은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고 서울에 진출했다. 회사의 몸집이 커지던 시기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성장이 주춤하게 됐다.
이 회장은 삼성상회의 종잣돈으로 1951년 부산광역시에서 삼성물산을 설립해 6·25 전쟁으로 발생한 고철을 수집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쇠가 부족했던 일본에 고철을 팔았고 이 수익으로 중국에서 설탕과 비료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했다.
그는 이 사업으로 큰 수익을 내 재기에 성공했다. 삼성물산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1953년 제일제당(CJ그룹 전신),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36명으로 시작한 삼성전자,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되기까지
당시 삼성전자공업는 직원 수 36명으로 시작했으며 첫해 매출은 3700만원 수준이었다. 금성사(현 LG전자)에 뒤진 2등이었다.
이 회장은 1982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일본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것을 보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이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미국 유학파를 대거 스카우트하면서 첨단반도체 사업에 도전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84년 삼성이 수출을 시작한 64K D램에 대해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가격을 기존 3달러에서 1달러80센트로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도 덤핑에 가세하며 가격이 30센트로 폭락했다. 삼성은 20센트로 대응해 1984년에만 13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이 회장은 초기 손실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해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그 결과 1992년 64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반도체 생산업체로서 발판을 마련했다.
1984년 3월 삼성전자공업은 회사명을 현재 이름인 '삼성전자'로 바꿨다.
이후 4M S램, 4M 슈도 S램을 개발해 S램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갖췄다.
D램에만 치우친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위해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도 진출했다. 512M, 1G, 2G, 4G 등 제품을 개발하면서 2003년부터는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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