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전닝 _ 주차하면서 해결한 물리학 난제

2020. 5. 7. 22:01Life/상식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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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으로서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1947년에 시카고대학으로부터 겨울방학 동안 고급물리학에 대한 특강을 의뢰받았다. 그런데 며칠 후 대학 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수강 등록을 한 학생이 단 두 명뿐이라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것.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그래도 상관없으니 강의를 하겠다고 통보하고, 그 단 두 명의 학생들을 위해 자신이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강의에 임했다. 이때 찬드라세카르에게 강의를 들은 두 명의 수강생 역시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양전닝과 리정다오였다.

 

양전닝은 1922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수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베이징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윈난성 쿤밍에 있는 칭화대학, 베이징대학, 난카이대학의 연합대학인 국립 시난연합대학을 1942년에 졸업한 후 통계물리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5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양전닝.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1945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찬드라세카르의 특강 수강 당시 시카고대학에서 에드워드 텔러의 지도 하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후 그는 엔리코 페르미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1926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리정다오는 항저우에 있는 저장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시난연합대학에 입학해 2학년을 마친 후 정부 장학금으로 1946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리정다오 역시 시카고대학의 엔리코 페르미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찬드라세카르의 특강을 듣게 됐다.

 

이후 이들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함께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우주선 관측 실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고 1950년대 들어 가속기가 발전하면서 ‘이상한 입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약력의 좌우대칭성에 관한 실험법 고안

 

그런데 전자기력이나 강력(강한 상호 작용)보다 훨씬 약한 약력(약한 상호 작용)이 개입하는 실험 결과들은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아 물리학자들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양전닝과 리정다오 역시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1956년 5월에 둘은 컬럼비아대학 근처에 들렀다가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둘은 계속 약력과 이상한 입자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둘은 대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칭화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리정다오. ⓒ Wikimedia Commons, the free media repository

 

약력에서 좌우 대칭성을 제외시키면 그동안의 수수께끼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좌우 대칭성은 중력과 전자기력에도 나타나며, 기본입자들의 대칭성도 자연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좌우 대칭성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여기고 있었다.

 

즉시 연구에 착수한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불과 한 달 만에 약력과 연관된 기본입자의 변화에서 좌우 대칭성을 검증할 수 있게 하는 실험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그들이 제시한 방법대로 실험에 착수한 이는 위안스카이의 손자와 결혼한 중국 출신의 여성 실험물리학자 우젠슝이었다.

 

우젠슝은 방사능 물질인 코발트-60을 극저온에서 냉각시킨 다음 자기장을 걸어준 후 원자핵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때 코발트-60의 원자핵은 약력에 의해서 베타붕괴를 일으켜 전자와 반중성미자를 하나씩 내놓고 니켈-60으로 바뀐다.

 

그런데 베타붕괴가 한쪽 방향에서만 관찰되면서 양전닝과 리정다오의 예상처럼 좌우 대칭성이 결여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우젠슝의 실험 결과는 1957년 1월에 발표됐다.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이 놀라운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물리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

 

약력을 둘러싼 핵반응에서는 그동안 불변의 법칙으로 여긴 패러티 보존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에서 입자의 스핀을 가리키는 패러티는 거울상 대칭성을 뜻한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바로 그해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우젠슝이 공동 수상자에서 제외된 것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66년에 뉴욕주립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양전닝은 2003년 10월에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 칭화대학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에 82세의 나이로 당시 28세였던 광동외국어무역대학 대학원생 웡판과 재혼해 화제를 낳았다.

 

2016년에는 1964년에 취득했던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다시 중국으로 귀화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양전닝은 중국 최초로 외국적 원사에서 일반 원사로 바꿔 등재되었다. 원사는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종신 명예직으로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리정다오 역시 모교인 중국 저장대학에서 겸직교수로 활동하는 등 중국에 봉사하고 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생전에 리정다오를 가리켜 이론물리학자 중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하는 가장 훌륭한 학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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