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에이크만 _ 닭 모이서 힌트 얻은 비타민 선구자

2020. 5. 7. 22:17Life/상식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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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19세기부터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등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여러 섬들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1887년에 네덜란드 정부는 자바 섬으로 질병을 연구하는 특별위원을 파견했다.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가 이루어져 개화가 진행되는 곳마다 이상한 걸음걸이의 환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 병에 걸리게 되면 다리가 붓고 심하게 아플뿐더러 근육이 약해져 비틀거리며 걷게 된다. 심할 경우 심장 기능이 떨어져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1~2%부터 80%까지 치사율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그 병의 이름은 바로 베리베리, 즉 각기병이었다.

 

그런데 특별위원은 파견된 지 1년 만에 모두 철수했다. 각기병의 원인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작고 둥근 막대 모양의 세균이었다. 네덜란드의 통치 지역에서는 이 균의 전염을 막기 위해 철저한 위생 조치가 취해졌다.

 

각기병의 원인이 쌀겨에 있는 물질임을 밝혀 192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에이크만. ⓒ public domain

 

하지만 특별위원의 보좌인으로서 함께 파견되었던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라는 의사는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않고 그 지역에 새로이 설립된 세균학 실험실의 책임자로 남았다. 사실 그는 1883년에 이미 자바 섬에 군의관으로 파견되어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려 귀국한 후 독일 베를린으로 가서 세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던 코흐 밑에서 일했다. 에이크만이 다시 자바 섬으로 오게 된 것도 사실은 네덜란드 특별위원의 도움 요청에 코흐가 그를 추천한 덕분이었다.

 

에이크만이 홀로 자바 섬에 남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세균이 각기병의 원인이라기엔 아무래도 미심쩍은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세균이 원인이라면 개화된 마을에만 각기병이 유행하고, 그보다 훨씬 미개한 산골 마을의 원주민들은 그 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백미 먹는 교도소, 각기병 발병률 300배 높아

 

추가 조사를 진행하던 중 에이크만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특별위원회가 머물던 교도소 병원 뜰의 닭들이 모두 각기병에 걸렸다가 어느 날 일시에 완쾌된 현상을 목격한 것. 에이크만은 그 원인을 찾던 중 교도소 요리사로부터 결정적인 말을 들었다.

 

전에는 도정하지 않은 현미를 닭들의 모이로 주다가 한때 도정한 백미를 먹이로 주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에 그 모습을 본 교도소 감독관이 백미를 먹이로 주지 말라고 하여 다시 현미로 모이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이크만은 즉시 실험에 돌입했다. 닭들에게 백미만을 먹이로 주자 각기병 증상이 나타났고, 다시 현미로 바꾸자 거의 하루 만에 각기병 증상이 없어졌다. 그는 각기병에 걸린 닭들에게 도정 가공 시 제거되는 쌀겨를 사료에 첨가해서 준 결과, 각기병이 호전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로써 그는 동물에게 의도적으로 비타민 결핍 질병을 유도하고 그것을 다시 치료할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과학자가 되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각기병 발병률이 급식으로 제공되는 쌀의 종류와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하게 한 것. 그 결과 백미를 먹는 교도소는 현미를 먹는 교도소보다 각기병 발병률이 30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각기병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에이크만의 연구를 이어받은 동료 헤릿 그리인스 박사는 현미 속에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성분이 있음을 명확하게 결론지었다. 그리고 폴란드 생화학자 카시미르 풍크는 1911년에 현미의 각기병 치료 성분이 아민임을 밝히고, 그 필수 영양소에 생명이라는 뜻의 비타(vita)와 아민(amine)의 두 단어를 합쳐 비타민이라고 명명했다.

 

에이크만이 발견한 각기병 예방 물질은 이후 비타민 B1이란 이름으로 명확히 구분 지어졌다. 에이크만이 밝힌 연구 덕분에 그동안 의문으로 남아 있던 여러 질병들이 다양한 비타민의 부족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처럼 현대 비타민 이론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에이크만은 1929년에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홉킨스와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프레더릭 홉킨스는 정상적인 대사와 성장을 위해 필요한 물질이 비타민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비타민 B1 최초로 정제한 일본 과학자

 

그런데 비타민 B1을 풍크보다 먼저 발견하고 그것을 쌀겨에서 단일물질로 분리 정제해 각기병의 치료약으로 판매한 이가 있었다. 일본의 농학자 스즈키 우메타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병사들에게 당시만 해도 귀했던 백미 밥을 제공했다. 그 결과 많은 병사들이 각기병에 걸려 군대의 전력이 오히려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다카키 가네히로라는 해군 군의총감은 급식을 보리밥으로 바꾸어 그 같은 위기를 모면했다.

 

이 같은 사실과 에이크만의 연구 등에서 힌트를 얻은 스즈키 우메타로는 1910년 쌀눈과 쌀겨에 든 성분이 각기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그 성분 물질을 분리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스즈키는 벼의 학명에서 이름을 따서 그 물질을 ‘오리자닌’이라고 명명한 다음 각기병의 치료약으로 판매했다.

 

이로 인해 스즈키는 에이크만, 풍크와 함께 1914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며, 1927년 및 1936년도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추천됐다. 하지만 스즈키에게는 노벨상이 수여되지 않았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나돈다. 스즈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부분 일본어로 발표해 그 사실이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첫 번째다. 하지만 1914년 노벨상 후보로 스즈키를 추천한 이는 독일 괴팅겐 대학의 볼프강 호이브너 교수였다.

 

그다음으로 제기되는 주장은 스즈키가 화학자나 의학자가 아니라 농학자였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당시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들이 의사도 아닌 농학부 출신의 스즈키가 각기병 치료제를 개발한 것에 대해 질투한 나머지 그의 수상을 공공연히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에이크만과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홉킨스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한 곳은 도쿄대학 의학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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