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렘 에인트호벤 _ 현대적 심전도계를 탄생시킨 의사

2020. 5. 7. 22:30Life/상식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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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미국 소셜미디어 레딧에서 이덴텔(edentel)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회원은 놀라운 경험을 털어놓았다. 손목에 차는 스마트 시계로 심전도를 측정한 결과 자신이 심방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평소 건강했던 터라 그는 처음에 오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정상으로 표시되고 자신만 계속 심방세동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정말 심방세동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으며, 담당 의사는 스마트 시계가 당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가 차고 있던 스마트 시계는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채 출시된 애플워치 4였다. 소비자용 전자제품에 최초로 심전도 측정 기능이 적용된 애플워치 4는 지난해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고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이덴텔의 목숨을 구하는 성과를 올려 화제가 됐다.

 

심전도 메커니즘을 규명해 19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빌렘 에인트호벤. ⓒ public domain

 

심방이 불규칙적이고 가늘게 빠른 속도로 떠는 병인 심방세동에 걸리게 되면 심부전의 위험이 정상인보다 2배가량 증가한다. 그러나 증상이 없고, 있더라고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 심방세동에 걸려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뇌경색으로 진단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심방세동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장기인 심장에는 동방결절이라는 부분이 있어 심실 안에 고인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기 위해 전기신호를 만들어낸다. 심전도란 그 같은 전기신호를 측정해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장치로서, 심장에 대한 검사 중 가장 기본이 된다.

 

심장 박동이 전류를 생성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19세기 후반부터다. 이에 따라 리프만은 생체 전류를 측정할 수 있는 모세관 전위계를 개발했으며, 왈러는 그것을 활용해 사람의 심장에서 최초로 전기 활동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단선검류계 개발

 

하지만 그 방법은 조악한 데다 정확도가 매우 떨어져 의학적인 실용 가치가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03년에 비로소 심전도계라 부를 수 있는 기기가 탄생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노벨상의 주인공인 네덜란드의 생리학자이자 의사였던 빌렘 에인트호벤에 의해서다.

 

에인트호벤은 1860년 5월 21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사마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10살 되던 해 의료장교였던 부친이 사망하자 어머니 및 동생들과 함께 조국인 네덜란드로 돌아와 위트레흐트에 정착했다.

 

위트레흐트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해 1885년에 의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바로 그해 라이덴대학의 생리학 교수로 임명됐다. 그는 1891년부터 심장의 활동전류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당시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러했듯이 리프만의 모세관 전위계로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심근의 실질적인 전위차를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인트호벤은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901년 초기 형태의 심전도계를 만든 후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당시엔 전선을 사람에게 직접 연결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인트호벤이 개발한 기준에 따라 1911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상업용 심전도 기계. ⓒ public domain

 

개를 대상으로 한 그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후 그는 병원 문을 닫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03년 그는 결국 현대적 심전도계의 시초인 ‘단선 검류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기는 무게가 272㎏에 이를만큼 거대했던 터라 작동을 위해선 5명의 기술자가 필요했다. 또한 검사를 받는 환자는 차가운 물이 담긴 양동이에 양손과 발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단선 검류계는 심장의 수축 및 이완에 따라 전기 자극을 감지할 만큼 성능이 훌륭해 근대 심장학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실 그가 개발한 단선 검류계는 최초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1897년에 이미 그와 유사한 기기가 개발되어 있었던 것. 그런데 그 단선 검류계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송되는 전보의 전기 신호를 증폭시키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 기기는 민감도가 떨어져 심전도계로는 사용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심전도 해석하고 다양한 임상학적 성과 거둬

 

에인트호벤의 진짜 업적은 심전도계를 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초로 심전도 곡선의 세부사항들을 설명하는 등 그것을 이용한 다양한 임상학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데 있다. 그는 1906년에 여러 형태의 심장병이 각각 특징적인 심전도를 나타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1908년에는 마침내 심전도의 해석에 성공하고 그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후 그의 단선 검류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몇몇 유명 회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단선 검류계를 출시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에인트호벤은 유명세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게 매우 공손하고 겸손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그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뿐만 아니라 3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국제 과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학창 시절에 열렬한 운동선수였으며, 의사가 된 이후에는 체육 교육의 열렬한 신봉자이기도 했다. 위트레흐트대학 시절에는 학생 조정클럽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체조 및 펜싱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팔꿈치 관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던 중 손목이 부러진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운동을 열심히 한 그였지만, 노벨상을 받은 지 3년 후인 1927년에 사망해 조그만 교회 근처에 묻혔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줄곧 맨 처음 부임한 라이덴대학의 생리학 교수로서 42년간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했다. 네덜란드 왕립과학원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1925년에 영국 학술원의 외국인 회원으로도 선출됐다.

 

 

출처: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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