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먼 왁스먼 _ 항생제 개발의 황금시대 연 일등공신

2020. 5. 7. 22:46Life/상식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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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튜어트왕조의 제3대 왕인 찰스 2세는 25년간의 재위 기간 중 9만 2000여 명에 이르는 결핵 환자들의 상처를 만져주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왕이 만져주면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결핵도 낫는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결핵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기원전 7000년경의 석기시대 사람의 척추에 흔적이 남아 있을 만큼 역사가 장구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감염성 질환으로도 꼽힌다.

 

이런 무서운 질환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치료법을 제시한 이는 로베트트 코흐다. 그는 1882년 결핵균을 발견한 데 이어 투베르쿨린이라는 무균화된 액체를 결핵균으로부터 추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투베르쿨린은 결핵 치료약으로서 주목받았으나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는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결핵 감염의 진단에만 이용되고 있다.

 

결핵균에 대한 최초의 항생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셀먼 왁스먼. Ⓒ Public Domain

 

그 후 사노크라이신, 프로민 등의 몇몇 결핵 치료제가 개발되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미국의 미생물학자 셀먼 왁스먼이 1943년에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함으로써 마침내 인류 최초의 결핵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왁스먼이 결핵균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32년 미국 결핵협회의 한 가지 조사를 의뢰받고서부터였다. 결핵균이 왜 토양에서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지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이었던 것.

 

1888년 7월 22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주 프릴루카에서 태어난 그는 1910년 유학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다음 해 미국의 러트거스대학에 입학했다. 1918년에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토양미생물학을 강의했다. 당시 그는 ‘토양미생물학 원리’라는 책을 출간할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다른 미생물에 비해 생존력이 강한 방선균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왁스먼은 토양 속에 결핵균을 파괴시키는 어떤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후 그 미생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작업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의 연구팀이 배지에 배양하면서 연구한 토양 미생물만 해도 무려 1만여 종에 달할 정도였던 것.

 

그 결과 왁스먼 연구팀은 1943년에 스트렙토미세스 그리세우스라는 방선균이 생성하는 항생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했다. 이 물질의 효과는 대단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진단받은 결핵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여주었던 것.

 

사실 스트렙토미세스 그리세우스는 왁스먼이 1915년부터 이미 주목하고 있던 방선균이었다. 생존에 부적합한 토양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다른 미생물에 비해 생존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 방선균은 여러 배양액에서 자랄 수 있지만 스트렙토마이신의 생성은 특정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추후 연구로 밝혀졌다. 이후 스트렙토마이신의 화학 구조식까지 밝혀졌고, 그 덕분에 순수한 형태로 분리할 수 있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결핵뿐만 아니라 장티푸스 등 페니실린으로 해결할 수 없던 많은 균주에 대해서도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항생 물질’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도 바로 왁스먼이다.

 

체계적인 연구로 결핵균에 대한 최초의 항생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왁스먼은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의사도 생리학자도 아닌 미생물학자이자 생화학자가 의약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항생제 탄생의 기폭제가 된 스트렙토마이신

 

노벨상위원회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과 페니실린을 순수하게 분리하고 치료제로서의 효과까지 검증한 하워드 플로리 및 에른스트 체인에게 이미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런데 플레밍의 연구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 왁스먼은 사실 노벨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큰 공헌을 했더라도 독창적이면서 창의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면 노벨상을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된 연구에 대해 노벨상이 수여된 것은 왁스먼이 유일하다.

 

왁스먼의 스트렙토마이신은 항생제 탄생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 사실 플레밍은 자신이 발견한 페니실린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프론토질 같은 합성 항미생물제가 나오자 페니실린 같은 자연산 항생물질은 별로 소용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 만약 플로리와 체인이 아니었다면 페니실린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페니실린에 이어 왁스먼 역시 자연산 항생제로 성공하자 많은 과학자들이 다시 미생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덕분에 네오마이신, 카나마이신, 젠타마이신, 토브라마이신, 아미카신 등의 항생제들이 속속 개발되었고, 스트렙토마이신은 항생물질 개발의 황금시대를 연 일등공신이 되었다.

 

1930년에 러트거스대학의 정교수로 부임한 왁스먼은 1940년 신설된 미생물학과 교수 및 학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1949년에는 미생물학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58년에 은퇴했다. 그러나 은퇴 후에도 계속 연구를 이어간 그는 일생 동안 4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고 18권의 저서를 남겼다.

 

 

출처: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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